Somang Church

제목: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본문: 3:1-10

설교: 정희숙 목사

 

3:1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베드로와 요한은 제 9시 기도시간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9시는 환산하면 오후 3시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오전9, 정오, 오후 3시 이렇게 세 번의 정시기도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하루 중에 가장 마지막 기도시간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이렇게 기도를 하러 성전에 올라갔다는 것은 참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누가 잡아서 죽였습니까? 예수님을 죽인 세력과 무리들의 중심의 자리가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들을 피하지 않았고 기도시간을 철저히 여겼습니다.

 

우리가 사도 안에 있었던 놀라운 역사 의식을 봐야 합니다. 지금 사도들 안에는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하는 통분함이 있습니다. 그 예수를 죽인 유대교세력의 본거지가 성전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더 기도를 열심히 합니다. 그들이 진정한 맘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던 성전의 역사, 그 하나님의 역사가 멈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옛 역사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단절이 와서는 안 됩니다. 아픔이 있고 단절이 있다 할지라도, 비록 그 안에 비겁한 배반자들도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이 잘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떤 관계인가. 베드로는 제자들 가운데 주님을 대신하는 대표성을 갖는 제자입니다. 그는 천국열쇠를 받은 자이며 반석입니다. , 믿음의 사도입니다. 요한는 사랑의 사도입니다. 지금 새 역사를 여는 순간에 믿음의 사도와 사랑의 사도가 함께 서있는 것입니다. 한때 믿음의 사도 베드로가 믿음이 흔들렸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깊이 회개하고 다시 돌아와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주님의 내 양을 먹이라는 귀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예수 공동체 안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사랑의 사도 요한은 베드로 안에 있는 회개의 모습을 너무 기뻐하고 그 어떤 것도 묻지 아니하고 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베드로를 사도의 대표로 세워서 역사를 이끌고 나가고 있습니다.

 

이 너그러움, 형제의 잘못을 용납하는 사랑입니다. 요한이 베드로를 다시 사도로 세워서 전도합니다. 초대교회가 이렇게 너그러운 포용성을 보였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안드레라는 형제가 있었고 요한은 야고보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자기 형제와 같이 사역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시시한 형제가 아니라 주께서 처음 불러주신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혈연적인 것을 다 넘어서서 멋있게 사역합니다. 처음 교회를 일으킨 것은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이 하나된 역사 속에서 놀라운 새 시대가 동이 텄습니다. 서로 아끼고 격려하면서 말입니다.

 

공동사역의 장점 :사람이 믿음이 강하지만 사랑이 없을 수 있습니다. 또 사랑이 풍부하지만 믿음이 적을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사랑이 많은 마리아였지만 믿음이 적어서 주께서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랑이 많은 데 믿음이 적을 수 있고, 믿음이 많은 데 사랑이 적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믿음의 사도와 사랑의 사도로서 서로 연합했습니다. 공동사역이 중요합니다. 혼자보다 둘이 따뜻하고 셋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공동사역을 할 때 나의 부족한 면을 체워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멋있는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전도를 할 때 제가 이런 게 부족합니다. 이런 면의 사람을 보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의 동역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앉은뱅이[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사도들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첫번째 기적을 기록한 장면입니다. 이 기적은 실로 큰 의미가 있는 기적입니다. 이후에 4장에 보면, 이 기적으로 인해 굉장한 큰 핍박을 받게 되지만, 그러나 이런 놀라운 기적을 맛보게 되므로 사도들은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앉은뱅이니 혼자 올 수 없어서 누가 매고 와서 성전 미문 앞에 두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숙명적인 삶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 뱅이라는 굴레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스런 모습이죠.

 

그는 숙명적으로 그렇게 비참한 사람입니다. 자기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삶이죠. 이 사람은 구걸하고 살 수밖에 없고 남의 손만 바라보고 살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그가 성전에서 구걸하는 가?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와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성전 입구에서 비둘기도 팔고 각종 제물로 사용되는 동물들을 팝니다. 사람들이 제물을 사고 나면 잔돈이 남습니다. 앉은뱅이 거지는 그 자리에서 그 돈을 얻고자 함이죠. 그것만을 바라보고 그것만이 그에게는 초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사도들이 이 앞을 지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거지는 모르지만 놀랄만한 만남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이 거지가 지금 구걸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놀라운 능력을 드러낼 은총의 종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만나서 거지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 은총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베드로와 요한이 거지가 구걸하는 걸 주목하여 보고 우리를 보라.”합니다. 무엇을 보라는 말입니까? 왜 우리를 보라고 합니까? 사도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가지고 있는 자기들을 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거지를 보았을 때 가슴깊이 다가오는 게 있었을 겁니다. “요한아. 저 모습이 너와 나의 모습이 아니었냐. 우리도 돈만 알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사슬에 저렇게 매여 있었지 않냐.”했을 것입니다. 사도들의 이전날의 모습이 바로 그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에게 이 숙명의 사슬이 깨졌고, 그리고 지금 이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나로 바뀌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 안에 일어났던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면서 놀라운 삶의 변화입니다. 사도들은 이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보라는 겁니다. 이 거지는 이 주의 은총과 능력을 가진 사도를 보지 않고, 그들의 손만을 봅니다. “몇 푼의 돈이 있지 않나?”하면서 말입니다. 베드로는 그가 초점을 옮기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의 손을 보지 말아라. 우리를 보라. 우리도 너처럼 나면서부터 주어진 운명의 사슬과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없었다. 늘 돈만 알고 늘 은과 금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바뀌어서 여기 서 있는. 우리를 보라그러고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하고 사도안에는 정말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거지는 이때 절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더 엄청난 것이 있다. 네게 그것을 준다.”것이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권세가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네가 뭐든 원하기만 한다면 믿기만 한다면 그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 준다는 약속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이 믿음안에 있습니다. 이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했습니다. 그리고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았습니다. 육신안에 있는 그까짓 병. 그것도 다 하나님 주권안에 있는 것이 아니냐. “우릴 변화시킨 능력을 보라. 그게 너에게도 임할 수 있다.”하면서 그를 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일어나 걸으라!” 그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38년된 병자를 놓고 명령함과 같습니다. 그 자리에 베드로와 요한도 있었습니다. 일어날 수 없던 자를 일으키신 놀라운 일을 목도했던 사도들이 이제 여기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니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그가 발목에 힘을 얻어서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 앉은 뱅이의 기쁨이 느껴지십니까? 그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의 기쁨은 초월자 이신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이 기적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죠. 한 생명이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땅을 바라보고 살았던 인생이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로 바뀌는 놀라운 사건인것이죠. 이 사건은 성령의 역사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렇게 놀랍고 넘치는 은혜를 선물로 받아서 땅이 나의 초점이 아니라 나의 근원이 되는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영광 돌리게 되는 세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나는 무엇을 주목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는 금과 은 내게 없어도 내게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 있습니다. 위로부터 내려온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그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능력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 기적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능력을 행하라. 네 입을 열어 이 능력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자기를 개발하자면, 먼저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을 보십시오. 그들은 분명한 자기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매우 정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이를 부요케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가진 자다.”라는 자기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매우 분명한 자기 인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기적의 사건을 보면서, 이것을 남의 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봐야하고, 올바른 자기 인식이 이 기적의 출발점이자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금과 은은 내게 없다.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우리는 정말 이 기적의 사건 속에서 기억할게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무엇으로 새로운 속사도시대를 열어갈 것인가. 그 어떤 물질이나 그 어떤 것으로 이 역사를 열어가고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나를 변화시킨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값없이 받은 은총으로 역사를 열어갔음을 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부족하고 초라한 모습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변화시킨 은총과 이 사랑을 증거하고 한량없는 주님의 선물과 축복을 증거하는 것으로. 속 사도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것입니다.

 

선교란 무엇인가? 내 안에 일어난 변화와 삶의 변화를 증거하는 겁니다. 전도를 다른 것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2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의 사랑과 은총을 전파하는 것이죠.

 

둘째는 그로 말미암아 내 안에 일어난 부인할 수 없는 변화의 사건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가 힘들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바의 느낀 것을 설명하는 겁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나를 보라.” 내 안에 일어났던 변화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를 설명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나와 너로 연결될 때, 감전되듯 내 안에 있던 능력이 그 안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손을 붙잡고 당겨줘야 합니다. 복잡한 이론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내 삶의 증거입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증거하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나를 이야기 하는 겁니다. 무슨 관념과 개념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이야기하고 나의 변화를 증거할 때, 그에게도 그 능력이 동일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이 믿음을 전해서 일으켜 세우는 역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도 은과 금이 없을지라도, 기적은 나사렛 예수의 능력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베드로가 이해했기에, 그를 통해서 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은 동일한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그의 손을 내밀어서 나를 일으켜 세워서 나의 삶을 변화시켰듯이, 나도 동일한 방식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 놀라운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이 다른 앉은뱅이와 같은 자에게 전달되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앉은뱅이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나 서고 뛰고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는 얼마나 기뻤는지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나 서고 뛰고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생명의 다시 사는 기적을 보게 될 때 함께 기쁘죠. 또 이 기적을 보고 모든 백성이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를 동일하게 일으키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 기적은 일회적인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자들 안에 늘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록해서 생명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도 이런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고 또 경험하는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께 찬미하며 영광돌리는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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