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간의 구조와 영원한 세계
본문: 창2:7, 눅16:19-31
설교: 정희숙 목사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눅16:19-31
창1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고 했었죠. 2장을 통해서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어던 구조로 인간을 지으셨는가를 생각해보고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지으셨는가 여기 보면 흙이 있고 생기가 있고 생령이 있습니다. 흙은 영어로 dust. 먼지입니다. 인간이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dust라는 말속에는 먼지와 같이 보잘 것 없는 것이 육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가시적인 형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죽으면 그 육체는 본래 취함을 입었던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란 이렇게 허망하고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체를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생기를 불어 넣으니 living being, 살아 있는 존재가 된것입니다. 인간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되게 하는 그 생기의 근원이 하나님입니다. 생기는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것입니다. 흙으로 빚은 인간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음으로 영혼을 소유한 영적인 존재. 곧 천사와 하나님을 닮은 생령이 된것입니다. 인간 영혼의 고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심어준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고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은 이처럼 육과 영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과 육에 관한 구절을 보겠습니다.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육의 몸이 있고 신령한 몸이 있다고 말합니다. 신령한 몸은 영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보이는 몸, 육이 있고 또 신령한 몸, 그것이 바로 영의 몸입니다. 하나는 육이고 하나는 영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이 육의 몸과 영의 몸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죽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영과 육이 분리가 됩니다. 분리되고 나면 육신은 썩어서 흙이 되고, 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습니다.(사40:6)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 수밖에 없습니다.(사40:7-8) 이처럼 한 때 건강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인간의 육체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시들고 말라지며, 결국에는 흙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육의 한계성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라고 했습니다. 육은 후패하나 영은 날로 새롭다는 것입니다. 육은 본질적으로 후패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영은 날로 새로워지게 됩니다. 인간은 모두 늙게 되어 있고, 인간의 육체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 흔적도 없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썩어지고 없어지고 말 육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육체는 옷과 같은 것이어서 언젠가는 낡고 헤어져서 벗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窓)들로 내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願慾)이 그 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전12:3-5)고 했습니다. 본문은 인간의 육체가 나이가 들면서 무너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떤다는 것은 다리가 떨린다는 것입니다.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진다는 것은 허리가 구부러진다는 것입니다.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친다는 것은 이가 빠져서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창(窓)들로 내어다보는 자가 어두워진다는 것은 눈이 침침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길거리 문들이 닫혀진다는 것은 귀가 어두워진다는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진다는 것은 먹는 것도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난다는 것은 잠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진다는 것은 목소리가 점점 쇠한다는 것이며, 높은 곳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오르막길이나 산 같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길에서도 깜짝 깜짝 잘 놀라고, 살구나무가 꽃이 핀다는 것은 머리가 희어진다는 것입니다. 메뚜기도 짐이 된다는 것은 힘이 없어진다는 것이며, 원욕(願慾)이 그친다는 것은 모든 육체의 욕망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간은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문자들이 문상을 오고, 죽은 자는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하늘 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간의 육체는 왜 무너지게 됩니까? 왜 인간은 늙어가고 쇠퇴하게 됩니까? 그것은 영원한 자신의 집으로, 하늘나라로 돌아가기 위함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3-16)고 했습니다. 믿음의 열조들이 그리워했던 본향이 있습니다. 그 본향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도 모두 믿음의 열조들이 있는 그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는 영과 육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인간의 인생도 매우 간단하게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육은 옷과 같은 것이어서 낡아지면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만 필요한, 제한적이고 유한한 것입니다. 땅의 장막은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늘의 장막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보다 하늘에서의 삶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우리의 본향인 하늘 나라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늘 나라를 사모하는 자에게 죽음은 본향인 하늘 나라로 나아가는 축복의 통로요 문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히8:5)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모형과 그림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상 세계와 하늘 나라의 관계입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하늘의 모형을 따라 만들어진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모형을 따라 그 그림자로써 이 땅을 지으셨고,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은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내려온 하늘 나그네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잠시 살다가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죽었다는 말 대신에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세계, 그것이 바로 하늘 나라입니다. 우리의 영이 죽은 후에는 바로 그 하늘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세 번의 형태 변화를 체험합니다. 처음에는 모태에서 10개월을 지내고, 이 땅에서 100여년의 삶을 살다가, 하늘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모태에서 10개월은 지상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기간이며, 지상에서 100여년의 인생은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인간은 먼저 모태에서 물속에 있지만, 세상에 태어나서는 공기 속에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에 가서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사랑의 법을 따라서 살아가는 자들만이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의 삶을 위해서 지상 세계에서 사랑의 삶을 연습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하늘 나라로 가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늘 나라에서의 삶을 준비하며 산다면,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 됩니다.
부자와 나사로 비유
[눅16:19~31]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야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사람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법이 있다. 자기 나름의 인생관이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인생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바른 인생관을 우리가 배워보자. 이 비유를 통한 교훈을 먼저 살펴보자.
(1)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눅16:19~22]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2절에 우리는 아주 간명한 진리를 우리는 얻을 수 있다. 부자가 있고 거지가 있는데,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던지 간에 그들은 죽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힘이 센 자도 아무리 부유한 자도 모두가 죽는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이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이다. 이 땅의 삶이 끝이 있다는 것이다. 전도서는 지혜서인데, 무엇이 지혜인가? 를 말하면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전7:2) 왜? 우리 인생이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 중에 지혜라는 것이다. 죽음을 아는 자는, 함부로 살지 않고 헛된 것을 따라 살지 않고 가장 가치롭고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한번 사는 ‘일생(一生)’을 산다. 그리고 죽는다.
2. 죽음과 하늘 나라에서의 심판이 있다.
중요한 진리는 인간은 죽는다는 것, 그리고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세계인 하늘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는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인간이 한 번 죽는다는 것은 알지만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무로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을 통해서 부자는 음부에 처해졌고, 나사로는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상에서의 삶을 통해서 하늘 나라에서의 심판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하늘 나라에 갔을 때 기쁘고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늘 나라의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심판대에서 칭찬받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깨어서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눅16: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있다. 이는 지옥이다. 거지 나사로는 어디에 있는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다.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가장 위대한 조상이다. 그 아브라함이 있는 곳은 천국을 말한다. 이처럼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의 인생은 어디를 가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가. 천국에 들어가는 인생이 되어야한다.
3. 하늘 나라에서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땅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6절을 보면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에서 천국과 지옥의 가운데는 큰 구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골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상대방에게 건너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죽음 후에 천국과 지옥을 결정짓는 것은 이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천국과 지옥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이 땅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하늘 나라에서, 죽은 후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서로 건널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천국을 선택할 수도 있고, 지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서 하늘 나라에서 나의 소속이 결정됩니다. 영적 세계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장차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곧바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고 하셨습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하늘의 세계는 바로 땅에 의해서 변화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우리의 소속도 이 땅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열쇠가 어디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는 눈에 보이는 열쇠가 아닙니다. 천국의 열쇠는 이 땅에 말씀을 아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진 자만이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열쇠는 바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그런 자들을 위해서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4. “지금” 천국에서의 삶을 결정해야 한다.
지옥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역사를 남긴 자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지옥은 ‘~~까’와 ‘~~껄’의 세계입니다. 반면에 천국은 다시 뒤돌아보아도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사랑의 역사를 남긴 사람들이 들어가는 세계입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에 “그 때 왜 그렇게 했을까? 그 때 잘 살 껄”이라고 후회하며 탄식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물이 엎어진 후에 다시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항상 이런 삶을 사는 자는 지옥을 경험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진리의 말씀을 선택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옥에 떨어진 자들은 극심한 영혼의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부자는 음부의 고통 중에서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16:23-24)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서의 고통, 그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늦은 후회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16:27-28)라고 했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다른 이들은 이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대가를 치르는, 후회와 탄식, 수치심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현재의 자리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지금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지금 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순간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소속이 하늘 나라의 천국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육을 가진 인간은 시간 안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시간은 어제가 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습니다. 회개는 어제 잘못한 것을 오늘 회개하고 내일부터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에게는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구릉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내일은 또 다른 오늘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회개의 마음이 생겼을 때 즉시 회개하는 자가 지혜롭습니다. “내일 해야지. 내일 해야지”라고 결정을 미루다보면 평생토록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늙어서 결국은 회개도 하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현재의 자리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지금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지금 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순간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소속이 하늘 나라의 천국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5.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천국과 지옥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알곡이나 가라지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단 추수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떨어지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떨어진 곡식은 다시 붙어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무에서 좋은 실과를 얻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매가 나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면 열매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늘 나라에 가면 구릉이 있어서 건널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세계에서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지금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해서 영원한 세계가 결정됩니다.
지상의 삶이 나무라면 하늘 나라의 삶은 그 열매입니다. 또한 인간의 육체가 나무라면 영은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에서 영혼을 거두어 가실 때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충성스럽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체가 없어지면 우리는 이 땅에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곧바로 하늘 나라로 가야 합니다. 지상의 삶은 순간을 통해서 영원을 창조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스스로 단축하거나,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사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육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있는 동안 아름답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더욱더 하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육체가 죽는 순간 모든 것이 종료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7. 회개하면 모든 것이 지워진다.
육이 카메라라면 영은 필름과 같습니다. 육체의 삶이 영에 사진처럼 찍히며 모두 각인됩니다. 그래서 누더기처럼 산 사람은 그의 영이 누더기처럼 더럽혀집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간신히 살아 나왔습니다. 장마가 되서 갑자기 물이 불어나 강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물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습니다.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그 시간이 굉장히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구조된 후에 말하기를 “들어갔다가 나오는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지난 인생이 모두 보였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잘못한 것, 혹은 잘한 것이 모두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모두 회개하고 “오 아버지 하나님, 제가 살아나기만 한다면 제 삶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신기한 경험을 하고 구조가 된 후에 신앙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영에는 모든 것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이 하늘 나라에 가면 그 모든 것이 숨김없이 하나님 앞에 심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난 날의 삶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에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남겨져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잘못된 삶의 흔적들이 많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길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난날의 모든 것들이 지워지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22:14)라고 했습니다. 하늘 나라의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죄의 두루마기를 빠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러운 두루마기처럼 죄로 얼룩진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야 합니다. 그래서 알록달록하게 죄로 물든 모습을 모두 벗어버리고 깨끗한 행실을 가진 흰 옷을 입은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계3:5) 그런 자들만이 천국의 진정한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며 아브라함에게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16:27-28)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16:29)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부자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눅16:30)고 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16:31)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모세와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당신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래서 무엇이 참된 인생의 지혜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사람들은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신기한 기적이 있으면 사람들이 회개하고 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해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자신의 죄와 문제를 회개하고 새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며 아름다운 삶의 추억들을 만들어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천국의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천국은 그에게 이미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에게 아브라함이 가르쳐주었던 그 말씀이 주는 지혜를 깨달아서 음부에 처하지 아니하고 천국에서 영원한 기쁨과 생명을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모든 삶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곧 생명과 같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생명도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권면처럼 영원한 삶을 준비하며 이 땅에서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엡5:1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시간을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하게, 그리고 불의한 일을 하는데 사용하지 말고, 매 순간 순간을 영원한 가치가 있는 삶으로 남기는 자들이 되어서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며, 하늘에서도 지극히 큰 상급을 얻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기를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