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본문: 행1: 3,6
설교: 정희숙 목사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우리가 지난주에 예수님께서 사역을 베드로에게 위임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삶으로 보여주시고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놀라운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부활의 주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셨는가? 그리고 남겨진 자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며 무엇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이 사도행전 1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주님이 오신 것만으로 단순하게 끝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어져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이 필요한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역사가 이어져서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궁극적인 오메가 포인트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메세지는 고통스럽고 슬프고 낡은 세계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큰 희망이요 기쁨이 되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그 누가 막는다고 할지라도 그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새 세계,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따라, 구원 계획의 모든 것을 반드시 다 이루실 것입니다. 그것을 기록해 놓은 곳이 신약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그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 사도행전이죠. 그런데 그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을 누구를 통해서 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입니다. 그럼 제자들은 무엇을 잘 알가야 합니까? 고난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그 의미 안에 감겨있는 사랑을 알아야 하는 것이죠.
우리는 교회에 사람에 처음 오면 로마서를 가르쳐 주죠. 로마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과 그 십자가의 은혜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인지 가슴 뜨겁게 알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복음을 잘 알고 나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원래 이 땅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셨는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그 낙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유리되었고 그 나라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나라를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이해입니다. 지금도 흘러가는 구원의 역사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가 그랜드 피날레(Grand Finale)가 있는 것입니다.
그 역사의 그랜드 피날레가 온다는 것을 노래한 곳이 어디입니까? 이사야서에 나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평화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 새 나라가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새는 누구입니까? 다윗 왕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의미는 새 세계가 오는데, 누가 이 세계를 만들어가냐면, 다윗의 후손들이 싹이 나서 새 세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유다지파입니다. 유대인(Jewish)라는 말은 유다(Judah)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유다지파는 상징으로 하면 사자새끼입니다(창 49:9). 사자처럼 매우 용맹스러운 지파였습니다. 그리하여 신앙을 굳건히 지켜서 그 후손들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만든다는 예언입니다. 이 나라를 킹덤(Kingdom)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이루어집니까? 여기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자들이 이 하나님의 영(성령)을 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소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인용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요엘선지자의 예언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요엘선지자 예언의 성취 뿐만이 아니라, 이사야선지자 예언의 성취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사야 11:3-4]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것이며.
여기서 그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친다고 했습니다. 입의 막대기는 무엇입니까? 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쟁취하기 위한 영적 전쟁에 있어서, 악한 세력과의 전투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이냐면, 혀(입의 막대기)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날 불의 혀 같은 것이 갈라져서 모든 사람에게 불이 내려졌고 그들의 혀가 풀려서 방언을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초자연적인 능력아래 교회가 있게 된 것입니다. 남종이나 여종이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어린아이에게 다 이런 놀라운 능력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행 2:17-18).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어디에서 나타났냐면, 혀에서 나타났습니다. 이사야의 구체적인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우리의 혀가 이 예언대로 풀려야 합니다.
사도행전 4장을 보면 베드로가 안나스의 법정에서 대제사장들을 향해서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천하에 구원을 받을 다른 이름을 내게 준 적이 없다! (No other Name!)”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이전과 동일한 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그 안에 무엇이 부족했냐면, 용기와 담대함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다음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나옵니다.
“[사도행전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물세례는 무엇이고 성령세례는 무엇입니까? 물과 불은 정화시키는 수단입니다. 사물을 정화시킬 때, 물로 씻어 내리거나 불로 태워 올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더러운 몸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은 무엇으로 깨끗케 합니까? 성령으로 깨끗케 합니다. 성령은 불 같아서 우리의 영혼의 죄를 태웁니다. 성령은 우리 영혼을 정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음을 받은 자들의 세계를 아름답게 그려놓은 그림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이사야 11:5-8]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여기 묘사하고 있습니다. 공의가 흐르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평화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킹덤(왕국)이 어떤 곳인지 9절이 결론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결론인 계시록에도 보면,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여기 보면, 우리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애통하는 것도 없고 아픈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소망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우리가 소망 가운데 구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우리의 소망이 너무 크기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오늘 굳게 믿고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미래에 장차 나타날 영광은 압도적인 것입니다. 믿음은 그 아직 안보이는 영광을 오늘 보게 해줍니다.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미래의 것을 오늘의 것으로 보게 해주는 힘입니다. 장차 올 세상이 너무나 압도적이고 화려하고 멋지기 때문에, 그 소망과 믿음이 오늘의 고난을 삼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기본적으로 이 소망 안에 거하기 때문에, 절망에 빠져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6절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것입니까? 이 둘 사이에는 굉장히 큰 간격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11장이나 다니엘서 4장과 역대하 29장 같은데를 보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백성은 환난과 고통 속에서 살면서 ‘자기민족의 구원’을 소망했습니다. 그들이 평화롭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민족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무화과 나무 밑에서 안연히 사는 세계(왕상 4:25)가 언제 올지를 꿈꾸었습니다. 언제 자기 민족이 시달림 받지 않고, 짓밟히지 않고, 죽임을 당하지 않고, 피흘리지 않고, 안락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올 수 있겠는가? 제자들이 이것을 지금 예수님께 묻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기다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은 그들이 기다리는 그 민족적인 소망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민족의 구원을 넘어서 있는 우주적인 나라(왕국)입니다. 헬라어로 ‘바실레이아’로서,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왕국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드러나는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한 민족만의 안위와 평화에 국한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사명(Great Commission)을 따라서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두 종류의 인식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열심히 정치적으로 투쟁을 해서 해방을 얻는다고 믿는 정치적인 열광주의가 있었습니다. 둘째는 갑자기 놀라운 세계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믿는 종교적 열광주의가 있었습니다(다니엘 7:1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설명해주신 가르침은 이미 마태복음 13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그 천국(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오는 지를 예수님께서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다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씨가 뿌려져 밤낮 자고 깨고 하면서 자라나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정치적 열광주의도 아니고 종교적 열광주의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정확하게 배웠기에, 우리는 막연한 기대도 없고 방황도 없습니다. 또한 까닭없이 하늘만을 쳐다보지 않는 것이죠 “[사도행전 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하늘만 바라보면서 이런 책망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속적인 방법론이나 무슨 정치적 사회적 개혁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장은 그 하나님 나라(킹덤)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나라, 주님이 통치하는 나라, 태초에 잃어버렸던 나라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민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종을 초월해서 만백성(all nations)에게 적용되는 세계입니다. 그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고, 그 나라는 기필코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도래하는 지 잘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도래할 나라를 꿈꾸고 살았다면, 그것이 다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주 냉정하게 심겨지고 자라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복음과 보혈의 십자가를 하나하나 가르치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오는 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의 씨를 하나하나 뿌리고 열매를 맺어가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입니다. 사회 운동, 정치 변혁, 철학과 사상이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바꾸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복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잘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예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신앙의 헌신이, 그 미래, 즉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의 삶을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의미를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이죠.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거나 지루한 인생이 될 수 없음은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나아갈 바를 열어 주시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여러분이 품고 살아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향한 크신 주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 그 뜻을 품고 우리가 걸어갈 때 그것이 생명의 길이되고 하나님 역사의 동참과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하나님의 역사에서 존귀한 자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지평을 열어가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주의 제자들이 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