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본문: 창1:27-28
설교: 정희숙 목사
[소망교회 주일예배]“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1:27-28, 정희숙 목사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세상을 지으셨다는 선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 한 구절을 믿음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차원으로 성경을 공부하려고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성경 속에서 우주 만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알려고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것은 과학를 통해 알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는가? 에 대한 것입니다. 과학을 깊이 공부하면 할수록 물리 세계의 법칙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처럼, 신앙이 있는 자는 성경에 담긴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성경의 놀라운 세계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과학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창조하셨는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왜 창조하셨는가? 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과학과 성경은 결코 서로 부딪힐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주죠. 우리에게는 과학의 지식도 필요하고, 성경의 지식도 필요합니다. 이것을 가지면 더욱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창조의 오묘함과 신비로움이 밝혀져서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우연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서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세계이며, 그 안에 놀라운 조화와 일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신앙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히11:6) 또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눈이 열리면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믿음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존재가 안개를 보는 것처럼 뿌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자기 복이 있습니다.
시편기자의 노래를 보겠습니다 시편8:1-9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魚族)과 해로(海路)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1-9)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운 세계를 바라보면서 감탄하는 시인의 노래입니다. 이 시가 우리도 공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밤에 밤하늘에 가득한 아름다운 별을 보면 감탄하죠. 우리가 산 정상에 올라가서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 이 시편의 시를 공감하며 감탄하고 하나님께 감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운 세계를 묵상하면 할수록 하나님께 깊이 감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를 대로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형상이 영어로 image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은 모든 인간은 귀하고 가치로운 존재라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외모, 성격, 인종, 나이, 국적을 불문하고 다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하나님을 닮은 모습만을 보시고,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허물과 죄가 있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려고 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우리 안에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 참 괴롭습니다.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 자신의 존재가 너무 가볍게 느껴질 때, 부족하고 능력이 없음을 느낄 때 더욱 그러하죠. 그러나 인간은 어떤 모습이라 하지라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돈은 구겨져도 돈이며, 그 가치가 조금도 사라지지않는 것과 같이 돈에 새겨진 형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돈으로써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음과 같이 우리가 아무리 심각하게 타락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었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셔서 구원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될 때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게 될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창조 신앙이 우리 가슴 속에 깊이 깨달아질 때 우리가 잃어버린 나를 찾고 회복할 수 있습니다. 나를 회복한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웠던 창조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열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나를 발견하고 나의 정체성을 찾을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기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떠한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한명 한명이 온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왜 지으셨는가? 무엇 때문에 나를 지으셨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왜 나를 지으셨나?“는 창조의 목적에 대한 물음이고, ”무엇 때문에 나를 지으셨는가 ?“는 존재의 목적에 대한 물음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존재할 때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목적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고“ 영어로 "be fruitful"입니다. 이는 열매가 되라 입니다. 어떤 열매입니까?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간단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구절입니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하나님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우리 안에 사랑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는 자가 없습니다. 아주 갓난아기도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랍니다. 모든 인간은 다 사랑 받고 싶어 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 마음은 누가 알려주어서, 누구로부터 배워서 생기는 마음이 아니고. 이미 가지고 타고난 것입니다. 본성적인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인간에게 넣어주신 것을 통해서 우리는 창조의 목적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 인간을 지으셨나? 내가 왜 사는가?” 라는 중요한 물음의 해답을 성경이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 사랑으로 인간을 지으셨을 까요? 우리가 사랑의 속성을 보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할 수 없습니다. 강제로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유의지로 사랑할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랑할 대상으로 나를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 받은 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한가지 ‘내가 너와 사랑하기를 원하노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고 받을 때 기쁨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사랑과 기쁨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마치 빛이 있으면 열이 생기는 것과 같이. 진정한 사랑은 기쁨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 받으려면, 하나님과 사랑 안에서 온전히 교제를 통해서 연합과 일치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적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하고 하나님과 믿음 안에서 가장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자가 될 때 우리는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에서만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스스로 자립할 수 없고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와 붙어 있지 않으면 말라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가지이기 때문에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하나되어 있을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절대 믿음과 사랑 안에서 온전히 하나 될 때,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 속에서 연합되어 있을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육의 비밀이며 신앙의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자각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서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통해서 인간은 성장해 갈 수 있고 아름다운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사랑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음으로 사랑을 알 수 있고, 또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자는 결코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알 수 있고, 그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생육된 존재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창1:31절에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쁨은 단지 자기 만족감에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다른데. 기쁨은 joy, 즐거움은 pleasure. pleasure는 자기 만족 , 자기 것을 채워서 오는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븜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 모든 것을 다시으신고 다 만드시고 아담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마치 엄마가 아기를 위해 모든 희생을 다하여서 아기가 한번 방긋 웃으면 엄마는 더 없이 행복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희생으로 얻는 기쁨.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최고 경지는 희생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희생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생육의 극점, 진정한 사랑의 완성은 희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생육한다는 것은 희생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희생을 알지 못하고서는 진정으로 생육한 자라고 할 수없습니다. 예수님의 한 알의 밀의 진리를 통해 생명의 역사, 번성의 역사는 희생을 통해서 열려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진리, 희생을 통한 번성, 이것이 우주의 질서이기도합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서로 상호보완적이며 합목적적으로 지어졌습니다. 희생적이며 이타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 안에 있는 창조의 질서를 깬 개체는 반드시 도태되거나 멸종당하게 됩니다. 아담은 하와를 위해서 지어졌고, 하와는 아담을 위해서 지어졌습니다. 이둘은 서로의 희생을 통해서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식물은 동물을 위해서, 동물은 식물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식물은 동물의 먹이가 되고, 자연계에 이산화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합니다. 동물은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 탄소를 식물에게 공급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만물은 모두 서로의 희생을 통해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법을 예수님을 통해서 깨닫고 이 사랑의 법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희생의 최고 경지는 용서와 대속입니다. 용서는 악인, 원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속은 그의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그의 죄를 나의 것으로 대신 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7-8)고 했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부인할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고 했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죽는 것보다 큰 사랑이 없는 것인데, 예수님은 원수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던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확증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사랑을 통해서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두셨던 창조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온전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룬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원하셨던 사랑의 법을 온전히 성취하신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이 타락함으로 잃어버렸던 세계를 다시 찾아서 회복하는 길을 여셨습니다. 인간의 창조 본래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온전히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가져야 할 사랑으로 가득한 인격과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향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고 증거해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진정한 기쁨이 되는 자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드러나는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살아갈 때 존재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창조의 목적과 존재의 목적이 일치할 때 존재의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목적을 상실하면 존재 목적도 상실되며, 결국은 무가치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따라 살지 않으면 무가치한 존재가 됩니다. 인간이 창조의 목적대로 사랑의 법을 따라서 살게 되면 반드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창1: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창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이것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평화사상입니다. 서로 상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꿈꾸셨던 세계는 이런 평화의 세계입니다. 진정한 평화. 이 세계는 바로 사랑과 기쁨 아네서 노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므로 태초의 꿈, 하나님 나라를 잃어비렉 된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마지각 결론은 반드시 이 세계가 회복되고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기쁨의 세계, 참된 평화의 세계 반드시 이루리라.
사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사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사11:8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사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상함도 해함도 없는 피흘림이 없는 세계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창세기1장에 나오는 평화사상과 동일합니다. 어떻게 이란 세계가 가능한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넘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 사랑의 지식,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가 넘칠 때, 우리 안에 이런 아름다움 세계가 회복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성경 마지막의 결론도 동일합니다. 눈물이 없는 세계, 더 이상 상처와 고통으로 눈물 흘리지 않는 세계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넘피는 평화의 세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태초의 하나님의 꿈, 아름다운 에던의 이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먼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하고 나부터 온전한 사랑의 열매로 , 예수님을 닮은 사랑의 존재가 될 때, 이 세상을 또한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어 에덴의 이상을 함께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기원합니다.